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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세상

이승만 대통령 4.19 시민혁명

by 꽃길만13 2023.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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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개요

1.출생

:1875년 3월 26일 황해남도 봉천군 성기리

2.사망

: 1965년 7월 19일(향년 90세) 하와이 주 호놀룰루 카운티 호눌룰루시 카이무키 구 마우타네리아 요양원

3.묘소

: 국립서울 현충원 이승만 대통령 묘소

4.재임기간

: 초대 대통령 1948년 7월24일~1952년 8월14일

  제2대 대통령 1952년 8월15일~ 1956년 8월 14일

  제 3대 대통령 1956년 8월 15일~ 1960년 4월 27일

 

이승만 전 태통령의 부정선거

1.세번째 대통령 선거(1956년)

민주당의 신익희 후보와 진보당의 조봉암후보와의 접전에서 이승만(자유당)은 이때 노골적으로 개표과정에서 표를 바꿔치기 하는등 부정한 방법으로 세번째 대통령이 당선되고 조봉암은 이승만이 당선된 이후 국가보안법으로 사형되고독재 정권을 유지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북한과 내통했다는 명분으로 제거되었습니다.

 

2.네번째 대통령 선거 도전(1960년3월15일)

세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친 이승만은 네번째에 도전하고 그당시 나이 85세였습니다.

고령의 나이인 이승만에게 무슨일이 생길 경우를 대비해 이승만의 권한을 넘겨받을수 있는 부통령 후보를 뽑게 되고 부통령 후도 선거 당시 자유당은 투표일에 여러명의 투표자가 한번에 들어가서 서로의 표를 확인할수 있게 감시하는 3인조, 9인조 투표를 실시, 그리도 사전에 미리 투표함을 채워놓기도 하는등 끊임없는 부정 선거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속에 노골적인 부정선거를 국민들은 더이상 참을수 없었고 특시 마산지역에서 대규모 시위 발생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시위를 진압하고 강제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에 의해 7명의 시민이 사망하였습니다. 

시위의 주모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공산당으로 몰려 참혹한 고문을 당합니다.

 

 

3. 4.19 혁명의 결정적계기

1960년 4월 11일  

3.15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실종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군의 시신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는 사건 발생하게 되고 이에 이승만은 별다른 해명없이 김주열군의 사망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한것이라고 하면서 계속적으로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폭력배를 동원해 습격하는일을 지속하였습니다.

 

 

 

4.19 혁명

더이상 참을수 없는 국민들은 4월 19일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대되면 서울의 거리는 20여만명의 시민들이 부정성거에 항의하고 이승만을 퇴진하는 요구를 하며 경찰과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외침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4월 19일 하루 동안 전국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을 당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이승만은 국민의 뜻에 굴목하여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1.서울대 4.19 선언문(1960. 4. 19)

상아의 진리탑을 박차고 거리에 나선 우리는 질풍과 같은 역사의 조류에 자신을 참여시킴으로써 이성과 진리, 그리고 자유의 대학정신을 현실의 참담한 박토(薄土)에 뿌리려 하는 바이다.
오늘의 우리는 자신들의 지성과 양심의 엄숙한 명령으로 하여 사악(邪惡) 잔학(殘虐)의 현상을 규탄 광정(匡正)하려고 주체적 판단과 사명감의 발로임을 떳떳이 선명하는 바이다.
우리의 지성은 암담한 이 거리의 현상이 민주와 자유를 위장한 전체주의의 표독한 전횡에 기인한 것임을 단정한다. 무릇 모든 민주주의의 정치사는 자유의 투쟁사이나 그것은 또한 여하한 형태의 전제정치도 민중 앞에 군림하는 종이로 만든 호랑이 같이 어설픈 것임을 알려 준다.
한국의 일천한 대학의 역사가 적색전제(赤色專制)에의 과감한 투쟁의 거획(巨劃)을 담당하고 있는 데 크나큰 자부를 느끼는 것과 똑같은 논리의 연역(演繹)에서 민주주의를 위장한 백색전제(白色專制)에의 항의를 가장 높은 영광으로 우리는 자부한다.
근대적 민주주의의 근간은 자유다. 우리에게서 자유는 상실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니 송두리째 박탈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성의 혜안(慧眼)으로 직시한다.
이제 막 자유의 전장엔 불이 붙기 시작하였다. 정당히 가져야 할 권리를 탈환하기 위한 자유의 전역(戰域)은 바야흐로 풍성해 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공복(公僕)이며 중립적 권력체인 관료와 경찰은 민주를 위장한 가부장적 전제 권력의 하수인으로 발 벗었다. 민주주의 이념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리인 선거권마저 권력의 마수 앞에 농단되었다.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사상의 자유의 불빛은 무식한 전제 권력의 악랄한 발악으로 하여 깜박이던 빛조차 사라졌다. 긴 칠흑 같은 밤의 계속이다.
나이 어린 학생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을 보라! 그것은 가식 없는 전제주의 전횡의 발가벗은 나상(裸像)밖에 아무것도 아니다.
저들을 보라! 비굴하게도 위하(威嚇)와 폭력으로써 우리들을 대하려 한다. 우리는 백보를 양보하고라도 인간적으로 부르짖어야 할 같은 학생의 양심을 느낀다.
보라! 우리는 기쁨에 넘쳐 자유의 횃불을 올린다.
보라! 우리는 캄캄한 밤의 침묵에 자유의 종을 난타하는 타수(打手)의 일익(一翼)임을 자랑한다. 일제의 철퇴 하에 미칠 듯 자유를 환호한 나의 아버지 형제들과 같이 양심은 부끄럽지 않다. 외롭지도 않다. 영원한 민주주의의 사수파(死守派)는 영광스럽기만 하다.
보라! 현실의 뒷골목에서 용기 없는 자학을 되씹는 자까지 우리의 대열을 따른다.
나가자! 자유의 비결은 용기일 뿐이다. 우리의 대열은 이성과 양심과 평화, 그리고 자유에의 열렬한 사랑의 대열이다. 모든 법은 우리를 보장한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생일동, 「선언문」(필사본 사본), 1960

 

 

2.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

나는 해방 후 본국에 들어와서 우리 여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과 더불어 잘 지내왔으니 이제는 세상을 떠나도 한이 없으나,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만 알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보고를 들으면 사랑하는 우리 청소년 학도들을 위시하여 우리 애국애족하는 동포들이 내게 몇 가지 결심을 요구하고 있다 하니 여기에 대해서 내가 아래 말하는 바를 할 것이며, 한 가지 내가 부탁하고자 하는 바는 이북에서 우리를 침략하려고 공산당이 호시탐탐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말도록 힘써 주기를 바라는 바이다.
첫째는 국민이 원하면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며,
둘째는 지난 번 정·부통령 선거에 많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선거를 다시 하도록 지시하였고,
셋째는 선거로 인연한 모든 불미스러운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해서 이미 이기붕 의장이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가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넷째는 내가 이미 합의를 준 것이지만 만일 국민이 원하면 내각책임제 개헌을 할 것이다.
이상은 이번 사태를 당해서 내가 굳게 결심한 바이니 나의 이 뜻을 사랑하는 모든 동포들이 양해해 주어서 이제부터는 다 각각 자기들의 맡은 바를 행해 나가며 다시 질서를 회복시키도록 모든 사람이 다 힘써주기를, 내가 사랑하는 남녀 애국동포들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음성녹음), 1960년 4월 26일, 대통령기록관 기록컬렉션 연설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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